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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로더의 회고록
“난 항상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기억해보니, 그 어떤 것도 나를 낙담시키지 않았다”
2020-12-03Jenny B. Fine

▲ 레너드 로더의 책 커버 중. 


레너드 로더(Leonard A. Lauder)는 그동안 이룬 업적에 이어서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발간한 지 일주일도 안된 로더의 회고록 ‘내가 지키는 회사: 뷰티 속의 삶(The Company I Keep: My Life in Beauty)’는 아마존(Amazon)의 뷰티 및 비즈니스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미화 약 1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거대 뷰티 기업을 발전시킨 87세의 레너드 로더는 현재 에스티 로더의 명예회장으로 재직중이다. 그는 마침내 어떻게 성공을 이뤘는지에 대해서, 또 인생에 대한 교훈과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전했다. 


로더는 출판기념일 당시 진행한 WWD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 어떤 것도 혼자서 하지 않았고, 항상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의 아내 주디가 한 말처럼, 나는 삶이라는 불을 지펴줄 땔감과 같은 주변인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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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54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3등으로 졸업, 곧바로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해군에서 리더십에 대해 배웠으며 자신의 가족 사업 성장을 다룰 접근법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고 한다. 


“예전에 나는 위층 침대에 누워 ‘세상은 너보다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그들에게 배우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하며 전했다. 그는 “그게 내 여정의 시작”이었다고 말을 보탰다. 


그 이후 로더는 항상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사업 성공의 핵심은 낙관적인 마인드와 담대함에 있었다고 전했다. 


“항상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기억해보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낙담시키지 못했다. 모든 게 나를 격려시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로더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1968년 크리니크를 론칭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에스티 로더는 매년 24%씩 성장하고 있었고 회사 내의 일부, 즉 자신의 어머니도 에스티 로더에 집중해야 한다며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로더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잘하면 경쟁을 불러온다”고 말했고, 이어서 “경쟁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끼리 겨루기로 결정했다”며 덧붙였다. 


그가 말한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은 1960년 영국 소비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때 당시엔 영국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것에 있어 매우 인색할 것이라는 관습의 관점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비싼 제품 ‘Re-Nutriv’와 함께 에스티 로더 브랜드의 영국 론칭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로더는 “반신반의했으나 결국엔 결단했다”고 말했으며, 직감에 대해 밀어붙일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날, 에스티 로더는 약 4천 개의 지점을 가진 영국의 1류 뷰티 기업이다. 초기에는 로더가 유럽 내 사업 발전을 돕기 위해 런던 이전을 고려했지만, 결국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이 회사의 CEO였기에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런던으로 이전하면 그 정도 결정에 대한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겨야 할테고, 2년 후 다시 돌아오면 양도한 권한을 도로 뺏기도 힘들 것이라는 사실도 인지했다”고 설명했다. 


로더는 자신의 회고록에 큰 사업 승리를 이끈 우연한 순간들에 대해 쓰기도 했다. 그는 종종 “꿈을 꾸지 못하면 그 꿈은 이루지도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 우리의 경쟁사 ‘찰스 오브 더 리츠’가 틴트 립글로스를 출시하는 꿈에 대해 자주 꿨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고 하며, “우린 몇 주 안에 틴트 립글로스를 출시했다”고 얘기했다. 


레너드 로더는 “처음 입사했을 때 ‘가장 큰’ 회사가 아니라 ‘최고의’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그것을 성취했고 야망이 있으면 절대 멈추지 못한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내 친구 중 뉴욕 시 법무장관이 내게 말하길, ‘당선일은 곧 재선 출마 시작일과도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후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혔고, 나 또한 뭔가를 성취했을 때 그렇게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삶이 늘 업무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방법 중 하나는, 아스펜에서 하이킹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무릎 교체 수술을 받아 힘든 등산을 포기해야 했으나, 여전히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고 했다. 또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는 ‘노스우즈’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라고 전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로더는 활동적인 생활을 줄여야 했고, 친구들을 재회하길 학수고대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면 접촉이 필요하다”고 하며 자신에게 있어 사회화의 중요성에 대해 전달하기도 했다. 

 

반면 팬데믹으로 인해 좋은 점도 있었음을 설명했다. 로더는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의 삶은 매우 바빴다. 이젠 한 커플과만 식사를 하고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로더는 여지껏 많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못 만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워렌 버핏’이 그 중 하나다. 로더는 “그는 스타이자 유쾌하며, 나와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그를 칭송했다. 


로더는 낙관적인 태도로 현재와 같은 시기에도 사업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배웠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의 부모님은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 이 회사를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노력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용기를 내고 실천하라”고 독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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