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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 Korea Sessions : 당신이 KB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수많은 프로젝트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2020-10-26WWD Korea

▲ KB Lee / Serro Park Courtesy 


WWD Korea Sessions는 각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기업가 등을 심도 있게 살펴보는 시리즈다. 특히 이 전례 없는 시대에 그들의 이야기와 통찰력을 공유해 다음 세대를 고무시키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Seoul) LA를 기반으로 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언디핏티드(Undefeated)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가 된 것부터 나이키와의 협업, GD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PEACEMINUSONE)의 디렉터, 그리고 Emotionally Unavailable(이하 E.U)의 공동 소유주, 국내에서는 보그 코리아(VOGUE KOREA)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바이레도(BYREDO) 론칭, 아티스트 카우스(KAWS)의 내한 전시 ‘KAWS : HOLIDAY’ 컨설팅, 분더샵의 케이스터디(CASE STUDY) 론칭, 라이카(LEICA)와 함께 기획한 국제 갤러리 전시 등.. 

이렇듯 다양한 그의 역할은 그저 광범위한 이력서의 일부에 불과하다. KB Lee(한국명 이규범)는 경쟁이 치열한 패션과 디자인 산업 내에서 영향력과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기업가,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LA 토박이 KB Lee는 WWD 코리아와 함께 ‘WWD Korea Sessions’의 첫 게스트로 패션 산업에서의 그의 여정을 단독 인터뷰를 통해 공유한다. 


WWD : 당신을 잘 모르는 WWD코리아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KB : 나는 KB Lee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동시에 여러가지 일에 관여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내가 16살 때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난 학업을 위해 처음 뉴욕으로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뒤로 쭉 LA에 살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후 나의 커리어에 도움을 줄 능력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WWD : 예술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창작에 대한 욕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KB : 처음 뉴욕에 왔을 때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다. 난 어린 시절부터 항상 영화에 빠져 있었고,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이사하며 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의 진로를 바꿔놓은 훌륭한 교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안에 있는 예술적 재능과 사랑을 보고 예술 대학에 진학하도록 독려했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현재도 나는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특히, 힙합이나 재즈 같은 음악들에서 말이다. 그래서 당시 내가 좋아 하던 아티스트들을 위한 앨범 커버와 멋진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항상 난 패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좋아했고, 대학에 진학하며 디자이너로서의 테크닉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WWD : 대학 졸업 후, 디자이너로서의 첫걸음은 무엇이었나?

KB : 처음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항상 학교 프로젝트와 개인 포트폴리오를 위해 여러 그래픽을 디자인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어릴적 부터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재즈같은 음악, 일본과 뉴욕 등지에서 시작되었던 초창기 스트리트웨어, 그래피티, 스케이트보딩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서브컬처 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고 부르는 스투시(Stussy), 엑스라지(X-Large), 그리고 슈프림(Supreme) 같은 브랜드에 빠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브컬처에 빠져있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위의 브랜드들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많은 디자인들은 그 당시 내가 빠져있던 서브컬처 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후 나는 음악 관련 디자인을 많이 했다. 운 좋게도 나의 첫 작업 중 하나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를 위한 디자인 작업이었다. 학교 친구 중 하나가 나의 작업물을 카니예에게 보여줬고, 그는 내게 곧바로 디자인 작업을 의뢰했다. 그 후, 카니예의 여러 음악 관련된 디자인을 도왔으며 제이딜라(J Dilla) 와 같은 아티스트나 Stones Throw와 같은 레이블과도 함께 일했다.  


WWD : 지금까지 스투시, 유니온(Union), 엑스라지, 언디핏피드 등 전설적인 브랜드와 디자인 작업을 해왔는데, 그 브랜드의 팬 부터 그들과 함께한 작업까지, 쭉 당신의 여정을 알려줄 수 있나?

KB : 약간의 행운과 타이밍, 그리고 노력이 있었다. 당시 유니온에서 일하던 친구가 함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알려줬다. 그렇게 이 곳 LA에서 유니온을 위한 프리랜스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게 많은 다양한 기회를 열어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스투시와 엑스라지를 위해 디자인을 했고, 유니온에서 일하는 동안 故 제이 딜라(J Dilla, 미국 유명 음반 프로듀서)와 함께 이벤트를 위한 티셔츠를 디자인 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LA에서 유니온과 스투시, 슈프림 등을 운영하던 에디 크루즈(Eddie Cruz)는 내 작업물을 보고 굉장히 좋아했고 자신과 언디핏티드 팀을 만나러 오라고 연락줬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언디핏티드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이후 디자인 책임자가 되었다. 유니온의 크리스 깁스(Chris Gibbs)는 나를 여러 사람과 연결시켰고, 에디 크루즈와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언디핏티드에서 에디 크루즈와 제임스 본드(James Bond)는 내가 다양한 일들 감당할 수 있게 자신감을 줬고 나를 신뢰해 주었다. 난 포지션 외에 여러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파리와 일본 등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다. 다양한 패션 이벤트를 위한 여행을 통해서 나는 패션 산업 전반에 걸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고, 디자이너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의 경험은 디자인뿐 아니라 커리어를 키울 수 있게 했다. 당시 스트리트웨어 시장의 성장은 느렸고, 따라서 그 산업군에서 일할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술을 끊임없이 성장시키고 업계 종사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뿐 이었다. 언디핏티드에서 시작하며 적절한 타이밍과 노력이 나에게 보답했다. 



▲ KB Lee / Serro Park Courtesy 


WWD : 언디핏티드를 떠난 후, 무엇이 당신만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시작하게 했나?

KB : 언디핏티드에서 나는 전 세계 패션위크를 위해 여행할 수 있었고, 스트리트웨어부터 럭셔리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만나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일찍부터 럭셔리 브랜드들 내에서 스트리트웨어 산업이 점점 더 인정받고 그들의 컬렉션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에서 영감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 두 산업, 특히 리테일 부문에서 교차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디핏티드에  있는 동안 나는 스투시와 그 외의 많은 프로젝트들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래서 내가 언디핏티드를 떠날 당시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것에 감사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시작하기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뿐 아니라 전 세계의 럭셔리 브랜드, 아티스트, 그리고 그 외의 크리에이티브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봤다. 나는 내가 한 브랜드나 한 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시야를 넓히고 싶으며 나만의 서비스를 위한 시장이 있음을 인지했다. 


WWD :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당신 계획의 일부였나? 한국 패션업계에서의 자신을 어떻게 봤는가?

KB : 나는 항상 한국에서 뭔가를 하고 싶었다. 당시 한국의 럭셔리 패션 마켓은 새로운 리테일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었다. 한국 여행을 자주 하다 보니, 한국에 내가 제공할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가능하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거기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한국 크리에이티브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또 한국에서의 생활로 얻은 인연들을 통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위한 컨설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내 첫 번째 주요 컨설팅 업무는 분더샵(Boon The Shop)과 함께한 프로젝트였다. 나는 그들이 당시 거치고 있는 새로운 혁신 과정에서의 해답을 새롭게 제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해외 브랜드 발견, 그리고 그들과의 컬래버레이션, 또 케이스 스터디를 분더샵에서 론칭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나는 퍼렐 윌리엄스의 하퍼스 바자 코리아 커버 작업을 맡기도 했고, 디뮤지엄 (D MUSEUM)에서 개최했던 전시 “YOUTH”에서도 컨설팅을 했다. 한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 패션 산업 뿐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도 여러 관계와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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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 : 나이키 x 피스마이너스원 에어포스 1 협업은 한국 브랜드가 참여한 가장 큰 협업 중 하나다. 이 협업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또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겪었던 과정이 어땠는지 공유한다면?

KB : 한국에 자주 오며가며 오래전부터 빅뱅과 함께 일해왔던 분의 소개로 GD를 만났다. 처음에는 친구로 지내다가 GD의 월드투어 Act III, M.O.T.T.E 를 컨설팅했고 이후 자연스레 피스마이너스원의 디렉터로 합류했다. 나는 커리어 초반부터 나이키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GD가 내게 합류를 권했을 때 함께 협업하는 것이 두 브랜드 모두에게 잘 맞을 것이라 믿었다. 나이키는 글로벌 브랜드일 뿐 아니라 GD 또한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이자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전, GD와 나는 피스마이너스원 론칭을 위해 파리 콜레트(Colette)에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나이키 협업을 담당하는 친구도 그 곳에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나이키의 프레이저 쿡(Fraser Cooke)은 가능성을 보고 협업 진행을 결정했고 그 결과 나이키 에어포스 원 x 피스마이너스원 협업이 이루어졌다. 


WWD : 한국 패션업계에서의 경험을 미뤄볼 때, 한국 브랜드가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나? 한국 패션 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KB : 한국의 에너지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한국에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신진 브랜드가 있고, 나는 한국의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놀라운 디자인과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봐왔다. 강혁, 서혜인, 그리고 피스마이너스원과 같은 브랜드는 한국에서 뜨는 수많은 젊은 브랜드들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 LMC, 미스치프(MISCHIEF) 등 오랜 기간 확실히 자리 잡은 브랜드도 있으며, 그들은 대단한 컬렉션을 계속 디자인하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한국 디자이너가 그들의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한국을 떠났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새로운 신진 디자이너들과 함께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한국은 독보적인 스타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새로운 디자이너들은 한국의 강렬한 색을 보여주기 위해 선두에 있다. 대부분의 한국 브랜드들은 국내 시장에 더욱 집중하고 있으며,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많은 한국 브랜드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도매업을 하지 않기 때문인데, 대신에 그들은 국내 소매업에 집중하고 있고 잘 해내고 있다. 기술과 소셜미디어로 인해 소비자들의 구매 방식은 끊임없이 바뀌며, 한국 브랜드들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이 계속해서 양질의 제품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한, 한국 브랜드의 성공은 계속될 것이다. 



▲ KB Lee / Serro Park Courtesy 


WWD : 당신은 많은 직책을 맡고 여러 영향력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프로젝트 여부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KB : 이 산업에서는 ‘평판’이 굉장히 중요해서 난 내가 최선을 다해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택한다. 내가 참여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나와 친밀한 브랜드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 즐거움을 느낀다.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나는 모든 것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을 쌓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해냈어”라고 생각하고 속도를 늦춰 본 적은 없다. 대신 계속해서 훌륭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다음 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갖는다. 때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항상 그 경험으로부터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그 자체를 배운다. 


WWD : 현재 이 전례 없는 시기에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당신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이 시대에 배운것은 무엇인가?

KB : 올해 초 나는 나이키와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지만, 일정 변경으로 가족을 만나기 위해 LA로 돌아갈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몇 주로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짧은 휴식기는 팬데믹으로 인해 6개월로 늘어났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 긍정의 마음을 유지하고 싶었고, 그 시간을 내 인생에서 재부팅할 타이밍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그동안 집에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삶 속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되어 오히려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난 말 그대로 지난 5년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지내왔기에 LA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 굉장한 축복이었다. 건강을 챙기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돌아볼 수도 있었다. 사업에 있어 나는 여러 프로젝트를 보류해야 했고, 스케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우선시해야 했다. 또한 파트너 에디슨 첸(Edison Chen)과 함께 나의 브랜드 E.U에 집중할 수 있었고, 전 세계 브랜드와 컨설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공개할 수 없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끊임없이 창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정말 감사하다. 


WWD : 패션업계에 대한 당신이 생각하는 전망이 궁금하다.

KB : 나는 항상 패션 산업의 유행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많은 것이 불확실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프로젝트와 캠페인이 대중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야 함을 느꼈다. 디자이너이자 브랜드로서 모든게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하며,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기술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교육이 잘 되어 있으며, 그들이 구매하는 제품에 대해 생각하고 의식한다. DIY든 커스텀이든 지속가능성이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을 들여 개인적인 요소를 제품 디자인에 녹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마인드를 갖고 디자인의 과정을 풀어낸다. 제품이나 디자인을 만들어낼 때,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뿐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제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다. 


WWD : 차세대 한국 디자이너들을 위해 짧은 조언을 부탁한다.

KB :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접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였다. 디자이너로서 두 가지 기술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은 장점이기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 시간 동안 아날로그 기술을 개발하길 권한다. 끊임없이 당신의 재능과 기술로 최선을 다하고, 주변 동료들 뿐 아니라 타 업계 사람들과도 관계를 이어 가며, 서로가 서로를 도울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라. 한국에 수많은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그들이 업계에 가져올 새로운 에너지를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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