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PEOPLE

PEOPLE
다카다 겐조에 대해 알아야 할 7가지 사실을 밝힌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디자이너 겐조
2020-10-07Layla Ilchi

▲2017년 다카다 겐조. / George Chinsee/WWD 


패션계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Takada Kenzo)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합병증으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다카다는, 패션과 향수를 비롯해 홈 리빙 등의 필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50년 이상 업계에 몸을 담은 그는 살아 생전 수많은 업적을 세워왔고 이브 생 로랑, 장 폴 고티에, 지암바티스타 발리, 칼 라거펠트와 같은 수많은 유명 인사 이자 다신의 동료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하기는 WWD가 살펴본 ‘혁명적’ 디자이너 다카다에 대한 7가지 사실이다. 

  • wwd 게시판/기사 중간 배너

1.다카다는 문화 복장 학원(Bunka College) 최초의 남학생 중 한 명이었다.



▲1971년,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다카다 겐조. / Reginald Gray/WWD

 

다카다는 잡지와 TV를 보며 패션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파리 또는 뉴욕 생활을 꿈꿨다. 이후 최초의 남학생 중 한 명으로 도쿄의 문화 복장 학원을 다녔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가정집의 내부 페인트칠을 부업으로 삼았었다.

 


2.올림픽 위원회는 다카다를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

 


▲1973, 아틀리에에 있는 다카다 겐조. / Reginald Gray/WWD

 

그의 아파트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철거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다카다는 올림픽 위원회에게 10개월 상당의 임대료를 보상금으로 받았다. 보상금과 지금까지 번 돈으로 그는 배를 타고 중국과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를 거쳐 파리로 향했다. 

 

이것이 다카다의 첫 여행으로, 그 경험은 그에게 세계와 패션에 대한 다문화적 관점을 갖도록 영향을 줬고 그에게는 오래가는 기억으로 자리했다. 


 

3.다카다는 프랑스 패션 관리 기구의 창립 멤버였다.

 


▲자신의 1974년 봄 쇼 백스테이지에 있는 다카다 겐조. / Reginald Gray/WWD

 

다카다는 1970년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지 3년 만에 오늘날 프랑스 패션 관리 기구를 구성하는 세 기둥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 의상조합(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du Prêt-à-porter des Couturiers et des Créateurs de Mode)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 되었다. 

 


4.다카다는 런웨이에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를 세운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다카다 겐조와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 Courtesy of @inesdelafressangeofficial

 

프랑스 모델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Inès de la Fressange)는 그녀를 처음으로 런웨이에 세운 다카다 겐조 덕분에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난 1983년 최초로 샤넬과 전속 모델 계약을 체결하고 칼 라거펠트의 뮤즈 중 하나로 활동하며 그녀의 시대에 가장 유명한 모델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네스는 WWD에게 전하기를 다카다에 대해 “나는 지독히도 수줍음을 많이 탔고,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카다 또한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탔고 그의 첫 패션쇼에 나를 세워줬다. 오늘날 우리는 이브 생 로랑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 말에 아무도 오트 쿠튀르 브랜드에 관심을 갖지 않음을 잊었다. 사람들은 겐조 쇼에 참가하기 위해 다투기도 했으니 말이다. 당시 다카다의 쇼는 가장 화려한 쇼였고, 이는 그가 최초로 많은 모델들뿐 아니라 연예인들을 런웨이에 세웠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5.다카다는 ‘조약돌’에서 착안해 향수병을 디자인했다.

 


▲1988년대 겐조 바이 겐조 오드 뚜왈렛. / Courtesy of @klararote

 

다카다는 1986년 새로운 겐조 퍼퓸(Kenzo Parfums)의 창립회장 피에르 브록(Pierre Broc)와 함께 향수병 디자이너 세르주 망소(Serge Mansau)를 만났다. 회의 도중 다카다는 망소의 책상에 놓인 매끈한 돌을 집어 들고 “나는 조약돌을 좋아한다”고 선언했다.

 

두 사람은 다카다가 “나는 꽃도 좋아한다”고 선언하기까지 약 1시간 동안 조약돌을 바탕으로 향수 병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소는 플라스틱 꽃을 집어 씹던 껌으로 꽃을 조약돌 위에 붙였다. 놀랍게도 이 프로토타입은 후에 겐조 빠 겐조(Kenzo Par Kenzo) 향의 향수병이 되었다. 

 


6.다카다는 홈 리빙 업계가 꼽은 저명한 인물중 하나다.

 


▲겐조 다카다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K3. / Courtesy of @kenzotakada_official

 

다카다는 패션계에 자리 잡은 후 2002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감 공방(Gokan Kobo)을 론칭하며 홈 리빙 디자인으로 눈을 돌렸다. 이 브랜드는 이후 다카다 바이 겐조(Takada by Kenzo)로 이름을 변경했고, 2007년에 문을 닫았다. 

 

다카다 겐조는 그의 패션 브랜드 겐조를 설립한지 약 50년이 지난 지난 1월, 럭셔리 가정용품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K3를 론칭했다. 

 


7.다카다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그의 이름이 오래도록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1978년 파리에서 룰루 클로소스키(Loulou Klossowski)의 코스튬 파티 매직 시티(Magic City)에 참석한 다카다 겐조. / Guy Marineau/WWD

 

다카다는 과거 WWD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자신의 이름이 “수년에 걸쳐 살아남았다는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덧붙여 그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느끼는 건 내가 파리나 런던의 패션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 각국의 젊은 이들에게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WWD KOREA>가 제공하는 기사, 사진, 그래픽 이미지, 영상물 등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 등 관련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WWD KOREA>의 콘텐츠를 사전 허락 없이 무단 복사하거나 개작, 전재, 배포, 판매할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WWD KOREA> 콘텐츠 사용에 관련된 문의는 전화(02-555-8825) 또는 이메일(info@wwdkorea.com)로 하시기 바랍니다.

WWD KOREA 유료 구독을 통해 모든 기사를 확인하세요

WWD KOREA 회원가입을 통해 모든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marc jacobs
  • diane von furstenberg
  • michael kors